반성: 어느 조잡한 식당에서 Discovery

원래 이 동네는 전파사니 이불집이니 철물점이니 하는 오래된 가게들이 대로변을 채우고 있는, 한갓진 동네였다. 지금은 스탠딩 커피가 들어올 정도로 난리굿이 났고, 한 2년 전부터는 그 대로변 가게들이 하나하나씩 새로운 술집, 음식점들로 바뀌고 있다. 그러니까, 1년 전까지는 부담없는 가격으로 가게를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단 얘기다.

그러다 보니 정말 '부담없는' 자본으로 가게를 시작한 식당도 몇 곳이 생겼다. 이 동네는 지금 이 시간에도 인간이 개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그야말로 장난이 아닌 관광지다. 으리번쩍하고 매끈한 것들이 잘된다. 관광객이고 주민이고 죄다 크리틱 지*을 하기 때문에 맛의 기준(지역색이 있는데, 정말 제대로 만든 맛일 게 아니라 그냥 짜고 달고 기름지면 된다. 이것도 뭐 쉽진 않으니까...)도 다른 곳보다야 높다. 실력과 자본력 없이는 어설픈 식당 따위는 관심 한 번 못 받아보고 씁쓸하게 사라지곤 하는 격전지란 얘기다.

오늘 저녁을 해결한 식당도 명백히 그 부류에 속했다. 매끈한 인테리어 공사는 꿈도 못 꾸고, 정말 아끼고 아껴 가까스로 식당 꼴을 갖춘 곳이었다. 자세히 말하면 너무 슬프니까, 조금만 묘사하자면 방과후의 피아노 학원에서 밥을 먹고 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어수선한 인테리어에, 다이소에서 팔던 3000원짜리 '후라이팬'이 놓인 주방. 눈물 없이는 못 보겠더라.
게다가 맥락 없이 가격표가 그대로 붙은 이쑤시개 통이 떡하니 놓여있는 걸 보고는 '이래서 음식은 맛이 있겠어?' 하며 입이 삐죽 나왔다. 팬시함의 문제가 아닌, 쾌적함의 문제가 음식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인가 보다 했다. 그 센스 없는 사장님이 요리도 하고 서빙도 혼자 다 하시는 데다가, 가격까지 저렴해버려서 어디서 반제품 떼다가 개죽이나 끓여줘가며 단가 맞추나 보다 하고 단정해버렸다. 할 것도 없는데 밥 장사나 하자, 유행이라고 하니까 우동이니 가츠동이니 하는 무난한 일본 음식을 얼렁뚱땅 배워서 조잡하게 만들어주는 그렇고 그런 식당이라고 단정해버렸다.

음식을 먹고는 그 건방을 금세 반성해버렸다. 창피한 생각이었다. 분명 주문한 음식은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어디를 어떻게 봐도 완성도가 높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성실함의 맛이 있었다. 먹고 나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잘 모르는 요리를 끙끙대며 연구해 물리도록 맛을 보고,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었다. 너무 좋은 쌀은 못 썼겠지만, 밥도 최선의 방법으로 지은 것 같았다. 내가 집에서 똑같은 것을 해먹었을 때와 비슷한, 사람의 맛이 났다. 이 식당은 자본도 없고 지식도 없고 센스도 없지만 대신에 음식만은 제가 먹을 것처럼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음식을 자본이 만드나? 지식이 만드나? 물론 자본과 지식이 있다면 그건 완성도 높은 음식이 되겠지만, 세상의 하루하루가 다 크리스마스의 프렌치 레스토랑이 아니니 이렇게 가진 것 없이도 성실한 음식도 세상엔 필요하다. 사람이 만들어 사람을 먹이는 성실한 음식은 공짜로 될 리가 없는데, 나는 대충 겉을 훑어보고 음식을 만든 사람의 성의까지 뭉뚱그려 후지게 단정지어버렸다. 

'현지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모든 소품을 일본에서 공수해온'
'일본의 명인에게 5년간 사사받아 그 맛을 공유하기 위해 한국에 조그맣게 식당을 낸'
'00호텔 0식당 주방에 10년 있다가 독립한' 

이런 패션 매거진 헛소리 같은 스토리에 너무 익숙해져서 건방 떠느라 참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세상의 모든 식탁이 완벽함으로만 갖춰져야 한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피로한 지옥일텐데. 어설프더라도 성실하게 만들었다면 음식은 제 나름의 맛을 획득한다는 걸 잊고 있었다. 멋부리다가 맛은 망했어도 성업 중인 이 동네 식당들의 개밥 사이에서 성실한 사람이 성의껏 만든 음식을 팔아 생계를 꾸리는 이 식당이 꽤 오래 살아남으면 좋겠다. 그야 물론 가격표도 안 뗀 이쑤시개 통을 너저분하게 밥상에 내놓진 말아주면 좋겠지만... 

덧글

  • 우앙 2012/09/27 23:24 # 삭제

    죄송하지만 어디에 있는 어느 식당인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사는 곳과 가깝다면 꼭 방문하고 싶어서요. naut님의 유려한 글 때문이겠지만 정말 호감이 가네요.
  • naut 2012/09/28 00:00 #

    두어 번 더 먹어보고 확신이 들면 제대로 정리할게요. 사실 시스템도 좀 특이한 집이라... 맛이 납득할 수준이면 재미삼아 가보기도 괜찮을 것 같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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