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크푸드.ntr의 어느 정점, 59쌀피자 Review

사회인에게는 화장실 유머로 가득한 영화를 보며 밥상 가득 정크푸드를 펼쳐놓고 방바닥 곳곳에 찌그러진 맥주캔을 널부려뜨리고 싶은 날이 있다. 불행하도록 맛없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자해에 가까운 그것을 우걱우걱 먹으면서 정크푸드.ntr를 듬뿍 섭취하며 그 음식 자체로 박장대소하고 싶은 이상한 심정인 것이다. 이건 그래서, 화장실 유머 영화에 미안하지만 그런 영화를 보는 밤에 딱 잘 어울린다.

이 정도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구멍가게 같은 회사에서 대표와 이사의 갱년기 히스테리에 치이고 출근거부 증상을 보이고 있는 멘붕 친구분께서 회사 코앞의 파파이스 뭐시기 패키지를 사오길 거부했기 때문에 일이 심각해졌다. 최소한 그런 데는 진짜 닭을 진짜 기름에 튀기긴 하는데... 

아무튼 그래서 동네에 얼마 전에 생긴 59쌀피자의 '오굿!박스'를 사왔다. 

첫 인상은 '겁나 무겁다'는 것. 덤벨 수준으로 무겁다. 뭐가 얼마나 든 거야!
그리고 두 번째로는 이 패키지 워딩의 호방함에 빵 터진다. 띄어쓰기 따위 신경쓰지 않는 호방함도 멋지다. 우와~대박!

이 뚜껑을 열어보면 한번 더 놀란다.
그간의 동네 정크푸드 체인점 역사를 집대성한 듯한 이 퀄리티를 보시라. 한반도 30년 정크푸드 역사가 한 눈에 보인다. 피자는 밀가루(쌀) 반죽에 토마토맛 소스, 모차렐라 유사 탄수화물/단백질/지방, 아주 약간의 양파와 올리브, 피망이 올라갔다. 스파게티는 퉁퉁 불은 스파게티에 토마토맛 소스를 범벅해서 위에는 또다시 모차렐라 유사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을 3cm나 쌓았다. 그리고 30년 전에도 학교 매점에서 팔던 '말고기, 닭대가리 햄버거'의 패티를 연상시키는, 갈아 만든 치킨텐더가 참으로 발군이었다. 맛없는 추억도 세월이 지나면 향수구나... 그나마 프렌치프라이와 웨지감자는 정말 감자를 튀겨놓은 것이긴 했다. 맥도날드의 우수성을 증거하듯 엄청나게 뻣뻣한 게 사실은 경이로운 지점이었다. 이렇게 만들기도 어려울텐데.

호방하게 적혀있던 피자, 스파게티, 텐더치킨, 감자튀김은 어디에도 없었다. 예상대로 그것들의 기호를 상징하는 것들이 들어있어서 정크푸드.ntr에 치유받을 필요가 있었던 우리는, 엄청나게 웃으면서 즐겁게 먹었다. 정크푸드를 기대했는데 정말 정크가 나왔다. 좋아 안 좋아? 그래도 텐더치킨만은 도저히 못 먹겠더라. 가장 많이 웃으며 그것을 집어 던지는 행복한 저녁을 보낼 수 있었다. 

네 번째 놀란 것은 이것을 사온 가게가 프랜차이즈라는 것이었다.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귀로 듣기 힘든 CM송이 (끄지도 못 하고) 줄창 나오는데 가사의 마지막은 "싸고 맛있어요. 59쌀피자"라나 뭐라나. 싸고 맛있는 음식은 개뿔. 애석하게도 이 '오굿!박스'의 가격인 16,900원을 지불하면 뻥 안 치고 맛있는 같은 음식을 같은 양으로 파는 곳이 지천...엉엉

다섯 번째로는 떫은 느낌이었는데 바로 프랜차이즈의 필요악이다. 이른 퇴직으로 밥벌이가 필요한 이땅의 흔한 가장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이란 결국 음식 장사인데, 그들을 항상 유혹하는 것이 프랜차이즈다. 평생 사무실에 앉아 서류만 주물러본 그들이 갑자기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더이상 월급이 나오지 않으니 금세 생활에 쫓기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그때 구세주처럼 짜잔 등장하는 것이 레시피는 물론 재료까지 반조리상태로 챙겨주는 프랜차이즈 님이신데... "아무 것도 몰라도 되니 몸과 돈만 오세요"라는 속삭임은 얼마나 달콤할까? 수없이 명멸하는 성의없는 프랜차이즈들이 필요악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나는 프랜차이즈 점주를 비난한다. 손쉬운 선택에 응석 부리지 마시란 말이다. 장사가 쉬우면 쉬운 만큼 리스크가 크다는 걸 그간 사무실에 앉아있는 동안 충분히 배우셨을 것이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 어디서 뭘 날로 잡솨봤길래 음식 장사도 날로 드시려 하시나? 음식 장사가 프랜차이즈처럼 쉬우면, 맛이 없고 먹을 것이 못 되는 음식을 팔 수밖에 없다는 점을 왜 고려하지 못하나. 신입사원이 명퇴자가 되기까지 자신이 쌓아온 스킬과 지식에 대한 리스펙트가 없었나. 음식 장사를 하려면 당신이 회사에서 쌓은 만큼의 스킬과 지식이 필요하잖아요. 회사에서 해온 만큼의, 최소한 그 절반만큼이라도 노력이 필요하단 말이다. 음식에 대해 무지해서, '애들 먹는 음식'을 안 먹어봐서 이만하면 먹을 만하다고 믿는 앎의 수준으로 음식 장사에 뛰어드는 게 스스로의 무성의이자 그 사업의 실패 요인이다. 소중한 퇴직금으로 프랜차이즈를 열 거라면, 최소한 그 프랜차이즈의 음식이 다른 곳과 비교해서 그 가격에 먹을 만한지는 알고 판단할 수 있는 상태까진 공부해서 해주셨음 좋겠다. 파리만 날리는 상황에서 "왜 이렇게 장사가 안 되지?"하며 손님을 원망하거나 그 권리금 비싼 가게 자리가 목 좋다고 뻥친 부동산을 원망하거나, 혹은 마지막의 마지막에 프랜차이즈 본사를 뒤늦게 원망하는 것은 누워서 침뱉기에 지나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을 것이다. 프랜차이즈를 쉽게 생각하는 분들, 음식 장사를 그간의 일보다 덜 알아도 된다고 쉽게 생각하고 무시하거나, 자신에 대한 동정에 빠져서 자신의 사업에 대한 이성적인 계산을 놓치지 말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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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번사이드 2012/10/25 13:17 #

    미국은 안가봐서 모르겠는데..요새는 뉴욕 이런데보다 서울에 정크푸드가 더 많지않을까요?
    싸래기와 중국산쌀이 섞였다고 확신하는[...]저희 사무실 배달도시락도 당당히 후보에 올려놓습니다~
  • naut 2012/10/25 13:22 #

    이건 확실히 정크푸드 올림픽에서 금메달 딸 기세였어요.
  • ㅁㄴㅇ 2012/11/27 22:55 # 삭제

    감자 저거 구운건데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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