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어선에 탔다, 전라남도 고흥 Review

전라남도 고흥에 다녀왔습니다. 굴을 먹으러 갔습니다. 네. 굴 먹으러 남쪽 끝까지 가고 그럽니다. 처음은 아닙니다. 작년만 해도 서해 굴 먹으러 덕적도까지 배타고 가서 물때 알아내 신새벽부터 쪼새 들고 갯바위에 달라붙어 굴 따먹고 그러던 원시인인간이니깐요. 원래 그럽니다. 전 굴쓰레기니깐요. 하다 하다 급기야 이젠 못생긴 작업복이랑 수협 구명조끼도 입고 굴 어선에까지 탔습니다. 내 굴들 어떻게 따나 보려고요. 아 뭐 아무튼 고흥 굴 거 참 맛나대요 :3

아침 일찍 배를 타고 나갔습니다. 저 뒤에 하얀 게 다 굴밭이에요. 저를 태운 선장님이 다른 집 수하식 양식장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선장님네 굴밭은 기계식으로 하시거든요. 사람 힘으로 굴을 끌어올려 사람 힘으로 담습니다. 
선장님네 굴밭은 몇 억을 투자해 기계화했습니다. 끌어올리는 것부터 세척하고, 담는 것까지 다 자동입니다. 사람이 할 일이 없는 건 아니고요. 억세게 굴을 갈무리하고 낑낑대며 담고 옮깁니다. 이날 선장님네 배는 굴 14톤가량을 수확했습니다. 굴 두 사래를 따면 이 정도 나온다네요. 통영 굴은 두 해를 기르는데, 수심이 얕아 바다가 온통 뻘탕인 고흥은 수하식 굴이 더 빨리 가득 자라 5개월에서 11개월이면 수확이 됩니다. 
선장님네 굴밭이 여기 있습니다. 80헥타르 농사 짓는다고 하시네요. 작년 굴 매출이 24억이었는데 손에 들어온 돈이 마이너스 1억3천이더랍니다 -_-;;;

새벽에 들렀던 굴 따는 작업장입니다. 알굴로 내다 파는 굴은 이런 비닐하우스에서 할머니들이 새벽3시부터 오후5시까지 까십니다. 많이 까는 사람이 하루에 25kg을 깐다고 합니다. 알맹이만 25kg요.
인건비가 들어가니 알굴은 비쌀 수 밖에 없습니다. 1kg당 몇 천원을 받는다고 하시네요. 할머니들이 쪼새미 하나 들고 손도 안 보이게 굴을 깝니다. 빠르게 까지만 굴 알은 하나도 상하지 않는, 다들 선수십니다. 겨울에 손이 빈 동네 인력을 쓰다 보니 인건비가 많이 들고 설비 투자가 워낙 거액이라 굴을 많이 딴다한들 선장님 손에 들어오는 게 별로 없답니다. 그래서 통영 같이 죄다 기업화된 굴공장에서는 어선부터 굴 까는 작업까지 다 외국인노동자들이 비율이 더 높습니다. 애초에 주민만으로 하자면 일손도 달리고, 인건비도 감당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건 고흥읍 시장 굴 가게에서 본 모습입니다. 분업화가 되어, 한 분은 쪼새로 껍질을 열고, 한 분은 칼 들고 관자를 잘라 알맹이를 꺼냅니다.
11개월 키운 고흥의 수하식 굴입니다. 고흥에서도 북쪽은 조수간만의 차이가 커서 투석식, 지주식 양식이 아직 남아있다고 합니다. 제가 갔던 남쪽은 이제 모두 수하식 양식으로 개량했습니다. 투석식, 지주식은 물이 나간 동안 굴이 쫄쫄 굶고 잡니다. 그래서 성장이 더뎌 생산성이 떨어집니다. 대신 뻘을 잘 먹고 바다향이 강하죠. 대량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어민들은 수하식을 선호합니다. 고흥 굴은 아무 거나 집어들어 까놔도 이렇게 알이 삐져나올 듯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먹이를 많이 먹는 수하식의 장점이 극대화된 겁니다. 선장님 말로는 통영에선 수심이 깊어 이렇게까지 꽉 들어차는 건 흔치 않다네요. 이렇게 뚱뚱하게 자란 굴은 보통 크리미한 맛만 강한데, 고흥 굴은 뻘탕에서 자라 뚱뚱하면서도 뻘에서 자란 굴의 바다 맛이 납니다. 서해 투석식, 지주식 양식 갯굴과 남해 수하식 양식굴의 장점을 둘 다 갖고 있네요. 
미안합니다. 흡입했습니다...*=ㅂ=)* 대신 굴 먹는 법을 알려드립니다. 바다에서 건져 바로 깐 굴을 그냥 먹으면 짭니다. 바닷물이 들어있어서요. 내장있는 뚱뚱한 쪽부터 입에 넣고 입술로 바닷물을 쭉 짜내며 먹는 겁니다. 좀 지저분하게 먹는 방법이긴 하지만, 그러면 간이 딱 맞아요.

고흥에 왔으니까, 고흥의 시그너처 향토음식인 피굴을 먹어야 합니다. 투석식, 지주식으로 키운 굴을 박박 씻어 커다란 냄비에 물을 끓여 삶습니다. 삶은 굴은 알맹이만 까내고 국물에 다시 넣어 뽀얀 국물이 날 때까지 끓입니다. 이걸 다시 식히는 동안 채 씻기지 않은 뻘이 바닥에 가라앉습니다. 윗물과 굴 알맹이만 추려내서 먹는 겁니다.
피굴을 기다리는 동안 피고막 두어개 먹었습니다. 얘들도 지금 제철이라 어딜 가나 흔하네요. 어우 저 흥건한 피 좀 보세요. 마싯다...:3

완성된 피굴입니다.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을 오래 잡아먹지만 레시피는 단순합니다. 소금간 약간, 쪽파 쫑쫑 다져서 조금, 깨 좀 얹어 먹는 겁니다. 김가루와 참기름을 넣기도 합니다. 맛은 생각보다 시시해서 그냥 굴국 식은 맛입니다(응?)
쌀가루로 풀을 쑤어 배를 갈아넣고 젓갈과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발효시킨 전라남도식 무김치도 먹었습니다. 이거 레시피 아시는 분, 제게 꼭 좀 알려주세요. 

선장님네 굴을 주문해 먹으려 합니다. 하도 맛나서 깨알같이 번호도 따왔죠. 알굴은 까놓은 굴이고 망굴은 안 깐 것입니다. 알굴은 5개월 키워 조그맣고(하지만 흔히 보던 서해 굴보다 크고), 망굴은 11개월 키운 것이라 위의 사진처럼 알이 꽉 찬 것입니다. 12월 31일에는 굴 파티를 하게 되겠군요. 노량진에 가면 고흥 굴이 올라오긴 하는데 아무래도 국내 생산량의 80%가량을 도맡는 통영굴이 흔하죠. 고흥은 마이너한 산지이지만 맛난 굴을 알게 되어 신났습니다. 덩실덩실.

잠이 덜깨서 어쩐지 무지 친절한 톤으로 써놨군요. 흔치 않은 포스팅이 되겠습니다.

덧글

  • 타누키 2012/12/21 12:10 #

    으헝헝 ㅠㅠ
  • 듀란달 2012/12/21 13:05 #

    으어어어 저 굴들! 저 맛난이들!
  • 2012/12/21 13:3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2/21 14:3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손사장 2012/12/21 13:46 #

    혹시,굴관련 일을 하시나요? 굴 관련 올리신 글을 보니 전문가의 냄새가 나요.ㅋ
    그 번호 공개해 주시면 안될까요? 저도 진짜 맛있는 굴맛 보고 싶어요.
  • 2012/12/21 14:3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naut 2012/12/21 14:36 #

    반도에 흔한 굴쓰레기일 뿐입니다;;;;
    번호 공개는 좀 거시기혀서 비공개로 알려드렸습니다 :)
  • 2012/12/21 15:0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2/22 00:1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Ithilien 2012/12/21 15:23 #

    엌. 이분이 행동하는 식도락가시구나!
  • naut 2012/12/22 00:14 #

    그게 그러니까 그저 반도에 흔한 굴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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