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하식 양식 굴 리포트, 전라남도 고흥 Review

고흥 굴과 관계 없는 그냥 굴 사진 <이미지 출처: 구글 검색>


맞다. 국내 굴의 최대 산지는 통영이다. 하지만 통영 굴보다 시장에서 높은 값을 치는 굴이 따로 있으니, 바로 고흥 굴이다. 온 바다에 하얀 굴 꽃이 흐드러지게 핀 전라남도 고흥에서 굴 맛을 새로 봤다.
여명에 배가 뜬다. 남도의 땅까지 얼려버리는 한겨울의 바닷바람이 어지간히 매워 단단히 싸맨 옷 틈으로 바람이 칼처럼 파고든다. 새벽채비를 서둘러 벌써부터 하루를 시작했을 굴을 따러 나선 길이다. 3톤 남짓한 힘을 내는 작은 배가 앞 바다에 가 닿자 육중한 기계를 꽁무니에 매단다. 부지런히 바다를 가르는 사이에 이내 하늘에 난로가 뜬다. 어부들은 시원찮은 열기를 마지못해 뿜어내는 듯한 겨울의 태양을 난로라 불렀다. 그 어설픈 온기나마 감사하다는 의미다. 갈매기조차 날지 않는 찬 하늘과 고요한 바다를 오로지 엔진의 굉음만으로 십여 분을 달린다.
찬 바다는 지천에 소복이 눈이 쌓여 있었다. 눈을 비비고 보니 그게 다 굴을 매단 줄을 잡고 있는 부표다. 고흥 남쪽 바다는 180헥타르가 죄다 굴밭이었다. 남해 바다의 눈은 굴이다. 바다 위에 쌓인 굴꽃이 다름 아닌 고흥의 겨울이다. 한 사래 너머 굴밭의 어부는 벌써부터 나와 배에 가득 굴을 채웠다. 고흥의 굴 양식장 180헥타르 중 80헥타르가 김호일 씨의 굴밭이다. 굴밭을 한 바퀴 휭 돌아 밭 귀퉁이에 배를 댄다.
고흥은 바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재래식으로 굴 농사를 지었다. 뻘밭에 돌을 던져 놓거나 대나무나 소나무 등을 뻘에 꽂으면 저절로 굴이 가서 붙는다. 각각 투석식, 지주식 양식이라고 한다. 이름만 양식이지, 자연산이나 다름 없다. 굴이 알아서 먹기 때문이다. 물이 찬 동안에는 굴이 뻘 섞인 물을 을 빨아들이며 플랑크톤 등 먹이를 섭취한다. 그리고, 하루 두 번 물이 빠져나가는 예닐곱 시간 동안은 성장을 멈추고 곤히 잠든다. 그러다 보니 성장은 늦지만 향 하나만은 찌릿할 정도로 옹골차게 든다.
지금도 물이 크게 빠지고 크게 차는 서해에서야 투석식, 지주식으로 굴을 하지만 통영, 고흥 등 남해에서 이름난 굴 산지에서는 이제 수하식이 대세다. 수하식은 봄부터 여름까지 중국이나 일본에서 수입한 가리비나 알맹이를 까고 나온 굴껍질 등 패각을 줄로 엮어 물에 잠가 놓는다. 채종한 굴을 붙여놓기도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굴은 알아서 붙는다. 수하식 또한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선 양식이랄 것도 없다. 굴이 물 밖으로 나올 일이 없기 때문에 수하식 굴은 제가 알아서 하루종일 성실하게 먹고 부지런히 살을 불린다. 겨울까지 통통하게 몸집을 불린 남해 굴은 그 맛이 농밀하기 그지 없다. 서해의 갯굴(강굴, 깡굴, 어리굴 등으로도 부른다. 대개 시장에서는 수하식 양식과 구분하기 위해 투석식이나 지주식으로 키운 굴을 자연산 굴이라 부르기도 한다.)이 알이 잘고 찝찌름한 바다의 향을 잔뜩 머금어 그 향으로 먹는 것이라면, 남해 굴은 농후하게 무르익은 고소한 맛에 먹는다. 카망베르 치즈라고 해도 깜빡 속을 만한 진하고 부드러운 맛이다. 국내 굴 생산량의 80% 가량을 도맡는 경상남도 통영은 이미 도시 자체로 거대한 굴의 공장이다.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거대한 수하식 굴 농장이 바다를 온통 메웠고, 기계화된 굴 양식이 성행이다. 
고흥에서는 수하식 양식은 흔해졌지만, 아직 이렇게 기계화된 굴 양식이 흔한 것은 아니다. 대다수의 굴 양식 어부들이 온전히 사람의 힘으로 굴을 끌어올려 자루에 담는다. 어부 김호일의 배에는 달랑 장정 다섯이 탔다. 큰 투자를 해 기계식 양식을 도입한 덕에 일손은 덜고 어획량은 늘었다. 셋은 레일을 타고 끌어 올려진 굴을 줄에서 끊어 내고 미역이니 파래니 말미잘이니 하는 것들이 잔뜩 붙은 부표를 갈무리한다. 그리고 뒤쪽에선 또 둘이 짝을 지어 자동으로 해수에 세척돼 나오는 굴을 커다란 자루에 담는다. 그 움직임들이 일사분란하기 이를 데 없다. 배를 붙이나 했더니 어느 틈에 크레인을 다루는가 하면 또 어느새 자루 주둥이를 한껏 벌려 쏟아져 나오는 굴을 받는다. 홍길동이 따로 없다. 
어부 김호일의 배는 눈 깜짝하는 사이에 16자루의 굴을 가득 채웠다. 한 자루에 900kg 가량이 드니 14톤 넘는 굴을 하루에 수확한 것이다. 순식간의 만선이다. 배는 이제 성급한 겨울 해가 중천을 찌른 포구로 돌아간다. 어부들은 뻘이 다 튄 작업복을 짠 바닷물에 헹궈낸다. 아무리 씻어낸다 한들 미소가 번진 입가엔 짠 맛이 가시지 않는다. 그게 갓 따올린 굴 맛이다.

이미 굴 까는 비닐하우스는 또다른 꽃으로 가득 찼다. 굴은 아직도 뻘을 뒤집어써 꾀죄죄하다. 바다 위 하얗던 굴 꽃 대신에 여기선 굴 까는 아낙들이 울긋불긋한 꽃이다. 찬 바다에서 건져 올린 굴을 까느라 울긋불긋한 모자며 조끼로 꽁꽁 싸맨 모습이 만개한 꽃밭이다. 아낙들은 새벽 3시부터 마흔 명 가량이 나와 일손이 된다. 채 밤이 깊기도 전, 새벽 2시부터 출근할 채비를 마친 마을 아낙들이다. 새벽 3시부터 나와 손도 보이지 않는 노련함으로 굴을 깐다. 오후 5시까지 꼼짝도 않고 앉아 굴만 깐다. 껍질에서 똑 떨어져 나온 뽀얀 굴꽃송이를 쉴 틈 없이 만들어낸다. 밥 때마다 주방에서는 구수한 남도의 밥상 내음을 풍기며 뚝딱뚝딱 식사를 차려낸다. 아낙들은 5분만에 밥이며 찬을 후루룩 마시고 또 굴을 깐다. 하루 14시간 동안 굴을 까면 겨울 동안 편히 먹고 살 수 있다. 알굴 1kg를 만들 때마다 몇 천원씩을 벌어간다. 많이 까면 하루에 25kg도 깐다. 10만원 넘는 돈을 하루에 만지는 게 남해 바다의 아낙이다.
아낙들이 까는 굴은 여름에 해 5개월 가량 앞 바다에서 자란 것이다. 서해의 갯굴보다야 알이 크고 통통하지만 향은 그 못지 않게 강렬하다. 한편 고흥 굴 중에서도 알을 까지 않고 구이용, 찜용이라고 해서 파는 것은 11개월을 키운 것이다. 굴은 이미 두 해를 기른 것처럼 크다. 주먹만하게 자란 굴을 손에 쥐고 칼을 넣어 비틀어 열면, 그 안에 속이 꽉 차있다. 서해 굴의 향과 남해 굴의 고소함을 두루 갖췄다. 구이용이니 찜용이니 하는 이름이 붙었지만 생으로 먹어도 끝없이 먹을 수 있는 굴이다.
통영에는 미안할 일이지만, 통영에 비하면 작은 산지인 고흥 굴이 비싼 것엔 이유가 있다. 맛이 곧 가격인 것이다. 고흥 굴 몸값의 연유는 바다에 있다. 고흥의 바다는 통영의 바다보다 얕다. 수심이 1/3가량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파도에 뻘이 일어나 물이 온통 뿌옇다. 굴은 그 혼탁한 바다에서 더 많은 영양을 먹는다. 뻘이 저절로 굴에 붙는다. 물에서 끌어올린 굴이 해수에 여러 번을 헹궈도 여전히 뻘 투성이인 이유다. 미네랄이 잔뜩 함유된 뻘이 고흥 굴 맛의 비결이다. 굴 양식 어민 김호일 씨는 “고흥 굴은 수하식으로 키워도 뻘에서 자란 것과 같은 효과”라고 자랑한다. 굴이 배불리 잘 먹으니 생육속도가 빨라 금방 키운다. 통영에서는 여름에 내려둔 굴을 다음 해 겨울에 수확하지만, 고흥에서는 같은 해 겨울이면 수확이 된다. 올해는 태풍과 적조 피해가 있어 굴값이 좀 올랐다.
굴 몇 개를 비틀어 열었다. 그 안에 넘쳐날 듯 바다가 가득했다. 껍질 가득 살이 오른 굴이다. 맛을 보니 이제 굴을 ‘바다의 우유’라 부르는 것은 그만둬야 할 것 같다. 고흥 굴은 ‘바다의 치즈’라 해야 마땅하다. 우유를 숙성시킨 것이 치즈다. 그만큼 고흥 굴은 오묘하고 맛이 깊다. 굴이 하얀 눈밭에서 꽃을 피웠다. 울긋불긋한 손길들을 거쳐 물오른 속살을 드러냈다. 고흥의 바다를 잔뜩 머금어 봤다. 입 안에서 겨울에 때아닌 꽃이 온통 피었다. 바다에서 난 겨울의 눈꽃이 굴이다.

고흥에 흔한 것이 해산물이라 밑반찬부터 국까지 죄다 바다에서 난 것들로 깔린다. 고흥에서는 굴 요리 또한 잘 발달해 특색 있는 향토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피굴은 딱히 어느 식당에 가서 먹으란 법이 없다. 고흥에서는 쌀밥만큼이나 흔한 것이 피굴이라 어느 식당, 어느 가정엘 가나 밑반찬으로 피굴이 나온다. 고흥에서 나고 자랐다면 그 어느 장삼이사라도 피굴 쯤이야 밥짓듯 뚝딱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외지인이 피굴을 맛보자면 다만 그날 식당 주인이 어느 찬을 하느냐가 문제다. 운이 맞아 그날 반찬으로 피굴이 나오면 횡재한 것이고, 아니라면 공치기 십상이다. 꼭 맛을 봐야겠다면 미리 몇 군데 식당에 전화를 돌려 따로 부탁해야 할 음식이다. 
피굴은 딱히 들어가는 것도 없이 굴 맛 하나로 만드는 음식이다. 뻘을 깨끗이 씻어낸 굴을 껍질째 뜨거운 물에 우르르 붓고 삶는 것으로 반이 완성이다. 몇 번을 끓이다 굴이 입을 활짝 벌리면 껍질을 건져내고 알만 쏙 챙겨 또 한 번 끓인다. 바닥에 불순물이 가라앉는 동안 사골국물처럼 뽀얗게 우러난 국물을 식혀 껍질에서 빠져 나온 알굴을 넣어 먹는다. 짭짜름한 게 좋은 입맛이라면 소금을 조금 넣는 것으로 양념도 끝난다. 옛날에는 참기름과 김가루를 넣어 더욱 고소하게 먹기도 했다만, 요즘식으로 쪽파를 쫑쫑 다져 얹어만 먹어도 충분히 고소하다. 만개한 꽃엔 별다른 장식이 필요하지 않은 이치다. 고흥에는 굴로 하는 또 하나 특이한 묘기가 있다. 진석화젓이다. 서해의 어리굴젓과 닮았다. 그러나 고흥의 굴은 서해의 그것보다 크기가 크고, 하얀 게 아니라 거무죽죽한 색으로 숙성된다. 고흥을 맛보려면 또 하나 빼놓지 말아야 할 명물 요리다.


(K 매거진 2013년 1월호)

덧글

  • 라라 2013/01/06 01:20 #

    ㄷㄷㄷ 맛보고 싶어 ㄱㅏ고 싶어지게 하는 글이군요
  • naut 2013/01/10 07:09 #

    겨울 고흥 먹부림 여행 괜찮습니다아
  • 종이책 2013/01/07 17:28 #

    편한 문장으로 쓰여진 포스트 읽고 이 글 다시 읽으니까 꼭
    볼 꼴 못볼 꼴 다 봐서 이미 내외할 것도 없는 소꿉친구를 십몇년만에 호텔 행사장에서 만나보니
    손대면 벨 것처럼 칼같은 정장을 차려입고 범접 못할 포스를 품고 있어 모르는 사람 같아지는 그런...
    구구절절한 느낌이 듭니다.

    - 이제 굴 먹을 줄 안다, 종이책.
  • naut 2013/01/10 07:08 #

    그...그렇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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